NAKAI | 2015. 5. 10. 05:22 | Comment


 150509 中居正広のSome girl' SMAP 



/ 오역에 의역도 있고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채로 번역해서 횡설수설해도 이해해주세요 /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게 있네요. 이제 많이 안정되었으니깐 이 시기면 되지 않으려나하고 마음대로 시기를 정해버렸습니다. 정말 개인적인 일 입니다만, 얼레 나 결혼보고 같은 분위기가 된거야? ㅎㅎ.. 그런 건 아니지만요. 진심으로 전하는 이야기인데요.


3개월 전 2월 19일.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향년 79세.


4월 2일이면 80세가 되는데, 80세가 되기 전에 ... 돌아가셨습니다. 2월 19일에 돌아가셔서.. 그 이후로 49재도 4월 8일에 끝나고, 그 다음 바로가 좋으려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냥 여러가지 다양한 타이밍을 고르면서 이 시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장례식도 가족과 친척들 뿐. 5,60명 이었으려나. 4월 8일.. 49재도 차질없이 잘 끝나고, 에.. 그리고 저의 집에도 아주 작은 5cm x 5cm 정도의 상자안에 재가 있고요. 제 형의 집에도 있고요. 그리고 둘째형에겐 불단이 있어. 그리고 산소는 아직이네. 49재가 끝난뒤에 산소를 지을 절을 ~


갑자기 돌아가신게 아니라 경위를 설명하자면, 2월 19일의 딱 2년 전이려나, 2년 전 2월에 폐암을 앓아서 한쪽을 전부 적출해서 그게 3월, 수술이 3월 12일이었어. 잊을 수도 없어. 내가 말야 이이토모하면서, 이이토모가 끝나고 WBC 때문에 도쿄돔으로 가는 날이었어.  그 날 아침 7시 반 쯤 이었나? 아침에 가서 수술을 8시간..9시간 정도 했으려나 3시 정도에 WBC로 도쿄돔으로 가기 전에 병원에 갔더니 관 투성이었어. 이게 뭐야...하고 이렇게 큰거야? 하고. '파파, 파파 히로쨩이야 알아보겠어?' 하고 그러니 '어...' 하고. 근데 아무래도 서툴렀어. 큰 수술이었으니깐. 난 잘.. 하다가 그런데 계속 손가락을 돌리는거야. '왜? 뭐야 뭐야?' 하고 물어보니 ... '마작' 이라고 ㅎㅎ.. 이런데도 마작하고 싶은거야 하고..


그 이후로 1주, 2주 후에 퇴원을 했네요.


그 해 가을 림프에 전이하여 방사선 치료에서 1 주일에 6회 정도 통원하고.. 7회였으려나. 아무튼 30몇번을 했어. 36번이려나. 응. 매일매일 갔어 방사선 치료. 그리고 그것도 치유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이되고 치료한다는 가을 쯤에 골프 하러 가거나 미야자키에 가거나 여러군데 여행가거나, 그 시기에는 그렇네. 아무래도 건강하지 않았으니깐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게 좋으려나 하고. 


그리고 작년에 하와이에 갔을 때 려나. 5월 6월.. 딱 1년 전, 딱 1년 전이야. 나 1년 전에 아빠랑 하와이에 있었다고. 하와이에 가자 했을 때 가기 전에 후두암이.. 다시 전이했다고. 그게 (여행가기) 2,3일 전이었어. 어떻게하지? 그러니깐 아버지가 '가면 되지 않느냐고'. 근데 아버지가 가지 않는다면 내가 가봤자 소용없는거니깐. 캔슬하는 것도 어쩔 수 없으니깐. 그래서 다른 병원에 얘기를 해봤더니 가는데 지장없다고. 내일 모레 돌아가시는 거 아니라고, 그래서 하와이를 갔네. 건강했었어. 것도 2일 연속으로 골프를 했어. 수영장에도 있었고 골프도 했고 여러가지 했고, 그리고 나와 아버지랑 두 명이 방이었거든. 술을 말야. 조금 조금씩 드시는거야. 마시는 안되는거 아니야 했었는데, 아침밥도 (일식)정식이 호텔에 있어서.. 발코니가 있거든. 발코니에 식사를 갖다주는데 그게 정~말 좋았어. 우리 아빠 아침 일찍 6시.. 5시 반 정도에 일어나서 밥 먹으러 가자 하거든. 빠르다고 ㅎㅎ, 어제 1시 2시까지 놀았잖아 하고. 


그리고 하와이 다녀와서 결국 수술을 한 게 8월이었으려나.


여러가지 방법으로.. 8월.. 3개월, 3개월이었으려나. 그 기간동안 입원 했었는데요. 그 3개월동안 100일 정도였는데요. 마실 수 없고, 먹을 수 없고, 말할 수 없이 100일. 이것은 괴로웠네. 응. 아무것도 해줄 수 없으니깐. 수술 하고 나서 퇴원할 때 까지 먹을 수 있을 때 까지, 물을 마실 수 있게 될 때 까지 기도, 기관을. 먹는 것을 기관으로 넣는거야. 그걸 연결하는 것도 결국 4번이나 수술했어. 제일 처음 8월 수술인데 목을 덮자고, 딱 喉仏(결후) 부분에 2cm 정도려나 구멍이 ~ 그래서 말을 못하고, 그래도 먹기는 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되니깐 3번, 4번 수술했으려나. 마지막에는 가슴의 살을 목에 이식하고, 허벅지 살을 다시 가슴에 이식하고 큰 수술을 여러번 하고 그랬는데 역시 아버지도 기력이 떨어지는거야. 먹고 싶지, 마시고 싶지.


역시 체중도 먹을 수 없으니깐 80kg 가까이 였던 체중이 입원하고 70kg가 됐으려나. 바로 50kg 가 되고, 40kg 대가 되고. 


그런데 한 번 차(お茶)의 허가가 나온거야. 의사 선생님이 차 드셔보라고 해서 얏타~ 하곤 차 먹을 수 있어 하고 아버지에게, 차가운게 좋냐고 따뜻한게 좋냐고. 그리고 이게 3일 4일 경과가 좋다면 밥도 먹을 수 있다고. 그리고 3,4일 지나고 목요일 쯤에 경과가 나와서 '정말 죄송합니다만, 수분은 정지시켜주십시오' 라고. 다시 stop 하는거야 하고. 그러니 아버지는 이제 됐어라고. 근데 그 때까지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을까 하는 먹고 싶은 목록을 계속 쓰고 있는거야 ㅎㅎ.. 꽁치정식, 돈까스, 라멘, 사시미 등등... ~


아버지는 됐다고 했지만 다시 한번 열심히 해보자고 마지막으로 해보자고, 그 때가 5회 정도 였으려나 다시 차의 허가가 나왔고 ~ 밥도 먹을 수 있게 됐어. 그 때가 아마 90.. 몇 일 째였나. 그리고 먹게 되고 4,5일이 지나니 퇴원해서 쉬어도 됩니다 해서 퇴원할까 한 게 12월. 11월 말일까. 퇴원한 날에 모두 스시 먹으러 갔었나, 축하다! 해서 역시 스시 먹어야지 해서 호텔의 스시 전문점에 가서 원하는 만큼 쌓아가면서 먹어 말했지만 역시 아버지말야. 목이 아무래도 겨울이니깐 건조해지면 가래가 굳어져서 호흡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거야. 관 같은걸로 목에 넣어서 빨아내지 않으면 안되는거야. 그게 1일에 1번이면 된다고 했는데 역시 2번 아니면 안되려나, 3번까지 해야하나 해서.. 퇴원한 날 밤이었나. 우리집에서 모두가 트럼프 하는데 아버지가 힘들다라고 해서 결국 구급차로 병원에 가서 그걸 반복했어. 나도 1주일에 3일, 4일 정도는 갔는데 가래는 역시 뺄 수 없어서 간호사분들이나 헬퍼분들을 불렀는데 역시 밤이랑 아침이 힘들더라고. 자고 나면 나오질 않거든. 자고 있을 때도 힘들어하니깐 '괜찮아? 병원갈까?' 망설이기도 하고, 그런데 입원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하고. 입원하면 나는 편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집에서 있고 싶다고. 그 기분 알 것 같았어. 그럼 집에 있는 최선의 방법은 모두가 있자고, 나와 형 두 사람도 있으니.


그래도 역시 1일에 한 번, 2일에 한 번은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되서, 처음엔 3,4일에 한 번이 2일에 한 번이 되고, 결국 매일가게 되서 다시 입원해야 했는데 입원은 싫다고. ~ 홍백이 끝나고 느긋하게 다음날 정오쯤에 가려고 했는데 아침 6시 반, 7시에 전화가 와서 괴로우니깐 와주면 안되겠냐하고. 가보니 괴로워서 그럼 병원가자고, 가서 가래 뽑고 먹으려고 했는데 식도가 좁아져서 먹을 수가 없는거야. ~ 그리고 몸의 절반이 계속 아프다고 하는거야. ~ 그리고 2월에 입원하고 퇴원하고, 다시 몇 일에 입원하고 퇴원하고, 나는 뭘 할 수 있는걸까 해서. 


난 말야 요리같은거 잘 못하지만, 병원 밥이 맛없었어. 정말 맛없다고 말하더라고. 자 그럼 내가 만들어볼까 해서 몸에 부담이 되면 안되니깐 스튜랑 톤지루와 매운 수프. 이 세 가지를 물병 정도의 도시락에. 그럼 먼저 스튜 만들자해서 그 땐 일단 1월 중순정도여서 먹을 수 있겠다 싶어 꽁치를 먹고 싶다 했으니 꽁치를 사서, 주먹밥도 만들고 말야. 연어 주먹밥이랑 매실 주먹밥이랑. 이걸로 하루되지 않을까 해서 여기에 톤지루도 있으니깐, 그게 톤지루가 영양의 보고 같은거니깐 ㅎㅎ.. 여러가지 채소들이 있으니깐.. 그리고 카레도 있고 루 밖에 없지만. 밥은 전자레인지가 있으니깐. 그리고 병원의 간호사분께 밥만 달라고 하면 되니깐 말야. ~ 굴 말야. 정말 작은 굴인데 한 입 거리밖에 안되는 굴인데 4분할을 하는거야ㅎㅎ 정말 성실했어 나. 


그리고 말야 주먹밥을, 나 쥐어본 적이 없는거야. 그거 뜨겁더라고. 만들어서 이거 완벽하겠네 싶어서 ~ 만들어서 어때? 라고 했더니 '이렇게 맛없는 주먹밥은 처음이다' 라고. '거짓말 말라고, 보통 처음 만들어주는 건 칭찬하잖아' 하고 '이렇게 맛없는거 먹어보라고' 해서 먹어보니 밥은 딱딱하지 맛은 없지 아. 이건 아니구나ㅋㅋㅋ 생각해서, 된장국만 만들어줘야 생각해서 다음 날 다시 도전해볼까 했는데 다음 날 만들었는데도 역시 맛없는거야. '너 말야 밥 짓는 방법이 말도 안되게 서투르구나' 하고 '이상하네...' 하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깨달았는게 있어. 정말 최근. 최근에 밥을 짓는데 내 밥솥이 잘못됐더라고. ~ 다되면 푸- 하잖아. 근데 푸- 하면서 뚜껑이 열려버려. 그걸 최근에 깨달았어. 그래서 밥 뒤짚을려고 가보니 뚜껑이 열려있어서. 왜 열려있는거지? 하고 ~


어쨌든 퇴원하고, 밥 짓는 법이라던가 물의 양이라던가 가르쳐주셨네요. '너 한번 해봐?' 하고 ~ 그리고 그 날 둘이서 먹고 얘기하고 말야. 나도 다음 날 일이 있으니깐 말야. 저녁쯤되서 돌아가려고하면 한 잔 마셔라고, 매번 속아넘어가지만 아니 나 차로 왔다니깐? 해도 한 입만 마셔라니깐 하고 마시면 ~ 한 입 뿐이야 하고 마시는거야. 그리고 한 입 마시면 나 돌아갈 수가 없는거야. 외로운걸까 하고. 그럼 뭐라고 만들까 해서 뭐가 좋을까 했더니 결국 야키소바 만들까 해서, 나야 레파토리가 없으니깐 '뭐라도 괜찮아' 해서. 난 말야, 작은 사발 같은것에 여러가지를 먹는게 좋아서 ~  그 때 1월 중순쯤이 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명란이라던가, 참마나 참치라던가 먹을시기가 되서 '너 먹지 않냐?' 고 하니깐 '난 됐어, 시간도 시간이니 돌아갈꺼야' 하니깐 '아직 빠르니깐' 하고 '한 잔 마셔' 하면서ㅎㅎㅎ '아니 한 잔 마시면 안된다고ㅎㅎ 돌아갈 수가 없잖아!' 하고 자 그럼 한 잔만, 아 근데 왜 한 잔 먹는지 모르겠다 하곤 결국 하룻밤 묵게 되고. 근데 한밤중에 괴롭다고 해서 구급차.. 나 구급차 4번 탔네. 이 12월, 1월, 2월 3개월 동안.


그게.. 돌아가시기 1개월 전이었으려나. 이런걸로 다음얘기는 다음주에 할까나. 응?


(19:57~이어서) 앞으로네요. 돌아가신 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네요. 이제.. 저 괜찮으니깐요. 다음주에 봐요. 

덤 엽서: 나카이군이 일주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일은 무슨 요일인가요? / 역시 토요일이려나. 















늘 당신의 라디오에서, 방송에서 전해주는 얘기와 가끔씩 패널로 나오는 모습을 본 것 밖에 없지만 파파는 그 짧은 순간에도 참 멋진 사람이셨고 파파는 막내 히로짱과 참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분이구나를 바로 느낄 수 있더라. 당신이 나카이마사히로로써 이렇게까지 훌륭하게 자라올 수 있었던 것에 역시 아버지 덕분이었다고 생각해. 평생 누구보다 강인한 분으로 살아계실꺼라 믿었던 아버지가, 당장 1년전만해도 함께 하와이에 놀러갔던 아버지를 보내고 49재까지 지내고 이제서야 마음이 추슬려졌다고 '생각한' 당신이 이 얘기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아서 진ㅉ..


내가 당신보러 가겠다고 행복했던 그 1년은, 당신에게 있어서 지옥같았던 1년이었겠구나. 당신이 27시간 때 그렇게 제정신이 아닐정도로 사람이 아슬아슬해 보이고 체력이 떨어지던게 생각나고, 펑펑 울던것도 생각나고 라디오에서 2월, 3월쯤이었나 요리레시피를 받겠다고 하곤 받고나서 다행이야. 이 힘든시기를 넘길 수 있어서 라고 얘기하던게 생각나고. 종활 특방을 어떤 마음가짐.. 으로 찍었을지 상상이 가지도 않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파파를 가슴에 묻고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의연하게 활동해온 당신을 보자니.. 힘들었겠구나. 힘들었죠.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개인적으로 작년 겨울에, 딱 나카이 파파와 나이가 한 두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나는 외할아버지가 얼굴에 말도 안되는 큰 혹이 생겨 큰 수술을 받아야 해서 서울까지 올라오셔서 대학병원에서 대수술을 받고 진정되고 면회가 가능해서 얼른 찾아뵈러 갔는데 모습을 보는순간 심장이 철렁하더라. 평생 내가 봐온 외할아버지는 누구보다 건강하시고 건장하시고 풍채가 당당하신 분이었는데 처음 본 순간, 사람이 수축되어 있다고 해야하나, 소멸될 것처럼 작아지고 병환을 이기지 못해 귀와 목 주변에 호스를 달고 몸져누우신 외할아버지 모습을 보자마자 엉엉 울었던 게 생각난다. 그래서 당신이 얘기하는 파파 얘기를 듣는데 너무 감정이입이 되는게.. 하..


당신이 49재가 끝나고 언론보다 먼저 자기 라디오에서 이렇게 우리들에게 알려주는것도, 이제는 괜찮다고 하는 것도, 슬프지만 덤덤하게 말하는것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시기가 됐으니 이렇게 말해주는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팬으로써 어떻게 해줄 수도 없어서 또 미안해. 당신 아버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천국에 갔을거라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파파가 좋은 곳에 갔으리라 기도할 수 있는 것 밖에 없어서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인간으로 태어나서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부모의 죽음을 두고 그 다음 날 카메라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일해야 하는 연예인의 직업을 가진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게 팬으로써 단 하나도 없었다는게 너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해서.. 당신이 다이죠부- 라고 해서 다이죠부가 아닌 걸 알지만 당신 주위의 친척들과 스탭들과 무엇보다 멤버와 팬이라는 버팀목이 있으니깐 부디 무너지지 않고 지금처럼 .. 힘내주세요. 이 글을 적으면서 당신이 부르는 스키요를 듣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